의대 정원 증원으로 인해 촉발된 정부와 의사들의 갈등이 한 달 넘게 지속되고 있다. 대다수의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지 20일이 지났다. 정부의 최후 복귀 통첩에 응답한 전공의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전공의가 떠난 후 주요 대학병원 교수들도 사직에 동참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정확히 2,000명이 증원된 2025학년도 대학별 의대 정원 배정을 발표함으로써 의사들과 정부의 갈등은 극한에 달하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이번 파업에 대한 정부, 의사, 국민들의 입장과 앞으로의 미래와 전망에 대해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해 본다.
의사들은 의대 정원 증원이 의사들의 필수과 지원 및 근무 기피 문제 해결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늘어난 의사 때문에 건강보험 재정 고갈 속도만 더 빨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의대 정원은 동결이지만, 활동하는 의사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한다.
의사들은 필수과 기피 문제를 의대 정원 증원으로 풀어야 할 것이 아니라, 수가 인상 등의 방법으로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필수과에 의사가 가지 않는 것은 노력은 많이 들고 책임질 일도 많은 것에 비해 보상이 너무 적어서 생긴 일이라는 것이다. 수가 인상을 통해 확실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의사들이 필수과로 가게 되고 현재의 인력 부족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의사들의 소득 하방을 올려서 소득이 비교적 높은 의사들에 맞춰줘야 한다는 것이다. 돈에 대한 문제이니 돈으로 풀어야 한다는 자본주의적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의사들 내부에서는 자신들은 전혀 아쉬울 게 없다는 입장이다. 전문의를 따지 못하더라도 일반 GP로도 월 천만 원 이상의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상황에서 굳이 고생하고, 욕먹어가면서 전공의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막말이긴 하지만 사실 아파서 제때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면 환자 손해이지 의사 손해는 아니다. 의사들은 이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고 이를 최대 무기로 내세우고 있다. 국민들의 의사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에 불을 붙이는 태도이기 때문에 의사에 대한 국민 여론은 현재까지는 매우 좋지 않다.
마지막으로 병원을 뛰쳐나간 전공의들은 파업이 아니고 본인의 의지에 의한 단순한 사직이라고 주장한다. 계약기간이 만료되어 개인 희망으로 나간 것이니, 돌아올 의무도 책임도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2,000명 수준의 의대 정원 증원을 발표했고 대학별로 배정까지 끝냈다. 자체 연구와 시뮬레이션 결과 최소한의 필요 인원을 5년간 2,000명으로 산정한 것이다. 기피과 의사 부족 및 지역 간 의료격차 해소 문제 해결과 앞으로 다가올 고령화 사회의 의료 수요에 대비하려면 이 정도 증원은 해놓아야 대비할 수 있다는 것이고, 사실 지금도 많이 늦었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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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정원과 의사수 관리에 대한 권한은 정부에 있으며, 이를 통제하고 관리하는데 의사 집단의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도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다. 의사들이 복귀할테니 의대 정원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자는 일부 의사들의 제안도 정부는 거부했다. 의사들과 주장이 다르긴 하지만, 정부는 의대 정원 증원을 위해 수년간 준비해 왔고 의사들과 협의를 거쳐왔다고도 이야기한다.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은 국민들의 건강과 생명을 담보로 한 매우 위험한 행동이며, 이에 대한 처벌로 각종 행정조치와 명령 등을 통해 의사면허 취소까지 언급되고 있는 상황이다.
선거가 코앞인 이유인 것도 있겠지만,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서 의대 정원 증원을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이상 정부는 의사들에게 물러날 생각이 지금으로선 전혀 없어 보인다. 사실 국민 여론이 절대적으로 정부에 유리한데 정부가 먼저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는 건 대통령 지지율이나 향후 국정 운영에 막대한 마이너스 효과를 줄게 뻔하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최소한 총선 전까지는 정권의 명운을 걸고 이번 이슈에 대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 다수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을 지지하고 있다. 평균적으로 70~80%가 의대 정원 증원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온다. 이 정도 수치면 진보와 보수, 남녀노소를 떠나서 국민들의 의견 일치가 이루어졌다고 봐야 한다. 국민들은 왜 의대 정원 증원을 찬성하는 것일까?
개인적으로는 의사 집단에 대한 배아픔과 시기와 질투, 그간 쌓여왔던 의사 집단에 대한 불만이 드러난 것으로 생각된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한 집단이 너무 잘 나가면 배가 아프다. 전문직 중 변호사, 법무사, 회계사, 세무사, 노무사 등은 지속적으로 정원이 확대되어 왔고 사실 과거의 명성보다 현재의 지위와 소득이 후퇴했다는 인식이 많다. 반면 의사는 과거에 비해 현재의 지위와 소득이 계속 높아져왔다. 의대 정원도 20년 이상 동결되었다. 한국인 특유의 질투와 시기 문화가 의사들을 비판적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또 한 가지는 의사들이 그동안 국민들에게 믿음을 줄만한 행동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대리수술, 리베이트, 의료사고 등의 이슈에서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외면하고, 숨기고, 면피하려 했고 실비보험과 비급여로 대표되는 도수치료, 백내장 수술 등의 의료 행위로 환자를 돈으로만 본다는 인식이 강해졌다. 문재인 정부 때 400명 증원은 공공의대 이슈와 코로나 시국 등으로 의사에 대한 여론이 그나마 괜찮았지만, 현재는 여론에 있어서는 완전히 수세에 몰린 상황이다.
다수의 국민들은 일부 환자들이 의사 파업으로 인해 피해를 입더라도, 이번 기회에 의사들의 콧대를 꺾고 버르장머리를 고쳐놓아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정부의 입장과 비슷해 보인다.
여기까지는 현재 의대 정원 증원으로 인한 의사, 정부, 국민의 입장이다.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이 문제가 전개될지 각 집단의 입장에서 예상해 본다.
대학병원 교수들까지 집단 사직에 나서면서 전공의들의 선택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이다. 지금까지는 전공의 없이 교수와 간호사들로 최소한의 의료가 진행되었다면, 교수들이 집단 행동에 들어가는 순간 대학병원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정부에서 이에 대한 묘수가 있다면 모르겠으나, 마땅한 대책이 없는 상황이라면, 당분간 의료 공백과 이로 인한 피해는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의사들은 자신들이 가진 무기의 힘을 너무 잘 알고 있으며, 지금까지 그랬듯 이를 십분 활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의사들 입장에서는 사실 파업 초기도, 지금도 아쉬울 게 별로 없다. 단기적으로 봤을 때 시간은 일단 의사들의 편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군의관과 공보의 200여 명을 대학병원에 파견하겠다는 기사가 났다. 사실 언발에 오줌누기 정도의 정책이다. 빠진 사람은 만 명 가까이 되는데 넣은 인력은 200명 정도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것에 불과하다. 의사들한테 엄포는 놓고 있는데 전혀 약발이 먹히지 않는 모양새다. 이제 대학병원 교수들까지 사직에 들어간 마당에 정부가 어떤 대책을 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정부는 필수과 수가 인상, 간호사법 재발의, PA 간호사 도입, 간호사 역할 확대 등의 정책을 후속 대책으로 들고 나오고 있다. 필수과 수가 인상을 제외하면 전부 의사들이 반대하는 내용의 정책들이다. 정부의 의사들의 갈등은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가 의사들을 향해 어디까지 칼춤을 출 수 있을지, 아니 정말 의사들을 향한 칼춤이란 게 있긴 있는 건지 궁금해진다. 정부 입장에서는 시간은 정부 편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현재의 의료 공백 사태가 장기화된다면, 국민들의 입장은 분열될 가능성이 높다. 가족이나 지인 중 당장 치료가 시급한 환자가 있는 경우에는 의사들의 편을 들 수밖에 없어진다. 이들의 원망과 분노는 의사 집단에서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의대 정원 증원을 시작한 정부로 향할 것이다. 사태가 장기화되면 이슈에 피곤해진 일부 국민들도 정부 비판 대열에 합류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총선이 야당의 승리로 끝난다면, 의사 파업에 대한 정부를 향한 비판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는 국민의 입장에서도 시간은 의사 편이라고 볼 수 있다.
의사들이 막말로 아니꼽고, 재수 없고, 밥맛이고 시기와 질투가 나서 너무나 배가 아프더라도, 나나 내 가족이 아프게 되면 방법이 없다. 나나 내 소중한 사람의 목숨을 걸고 의사들과의 투쟁에 나설 국민은 없을 것이다.
단, 이렇게 되면 의사들의 소득은 유지되더라도 사회적 권위와 명예는 바닥으로 추락할 가능성이 높다. 국민들에게 의사님이라고는 불릴 수 있겠지만, 더 이상 의사선생님이라고 불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번 사태에서 사실 의대 정원 증원은 메인 이슈처럼 보이지만 부차적인 이슈다. 지금까지 그럭저럭, 어떻게든 그나마 유지되어 왔던 현재의 의료체계, 특히 빅 5를 비롯한 대형 대학병원 의료체계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의대 정원 증원은 이번 사태에 트리거 역할을 했을 뿐, 어차피 조만간 터질 이슈였고 해결하고 가야 할 이슈였다.
그럼 왜 더 이상 지금의 체계가 유지될 수 없게된 것일까? 결국엔 돈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정부(건강보험공단)는 돈이 없다. 건강보험은 적자로 돌아섰고, 매서운 기세로 기금을 탕진하고 있다. 기금 고갈은 코앞에 다가왔고 지금 제대로 된 매스를 데지 않으면 체계는 붕괴된다. 재정 문제로 인한 건강보험 시스템 붕괴를 막으려면 보험료를 높여서 재원을 마련하거나 세금으로 보전하든, 의료비 지출을 줄이든, 아니면 둘 다 해야 한다. 건강보험공단도 돈이 없지만 정부도 돈이 없다. 세금으로 건강보험료를 메꿔주는 건 고령화 시대에 막말로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이 의미 없는 짓이다. 건강보험료를 올리는 것도 국민의 반대에 직면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정부는 의료비 지출을 최대한 억누르는 것으로 대응해 왔다. 저수가/저약값 정책, 비급여 치료 확대, 전공의 부려먹기를 해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그런데 시대가 변하면서 이 시스템에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일부 기피과 의사들이 부족해진 것이다(사실 정확히 말하면 당장 대학병원 기피과에서 써먹을 전공의가 부족해졌다). 동시에 수도권과 지방의 의료 격차가 확대되기 시작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의료비 지출 폭증이 예상되는 초고령화 시대도 다가왔다.
정부는 이 문제들의 일차적 원인을 절대적인 의사수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의사가 늘어나면 낙수효과로 인해 기피과나 지방에도 의사가 가게 될 것이고, 노인들 치료에 필요한 의사수도 확보되니 이로 인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의사수 증가로 인해 늘어나는 지출은 일단 나중에 생각해 보자고 미뤄놓았거나, 아니면 의사의 평균 수입을 낮추고 하향 평준화시켜 추가되는 비용을 최소로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한 마디로 정부는 의사들에게 돈을 많이 주고 싶지 않다.
의사들이 당연히 이에 찬성할리 없다. 밥그릇 문제는 의사가 아니어도 모든 집단이 민감하게 반응한다. 변호사, 약사, 한의사, 간호사, 공무원, 교사 등 모든 집단은 밥그릇 문제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의사들은 높은 소득을 받고 있지만 이를 본인들의 노력과 고생, 희생에 대한 합당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자신들의 기득권은 유지되어야 하며 소득 역시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늘어나야 한다. 수가가 낮아서 돈이 안되니 비급여나 기타 서비스 매출로 채웠고, 미용 시장의 수요가 폭발하자 이에 발맞춰 자신들이 독점한 권한을 이용해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는 이 모든 것에 대한 도전이라고 받아들였을 것이다. 특히 전공의들 입장에서는 의사 집단내에서 가장 열악한 대우를 받고 있음과 동시에 미래에 대한 리스크가 거진 것에 대한 저항이 더 심했을 것이다. 한 마디로 의사들은 계속해서 돈을 지금처럼 잘 벌고 싶다.
국민들은 어떤가? 국민들도 똑같다. 건강보험료를 더 내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지금 수준의 의료 서비스는 계속해서 받고 싶다. 조금 아프다 싶으면 소견서 받아서 바로 3차 병원으로 외래 진료 보러 가고, 빅 5 병원 명의가 해주는 수술과 치료를 받고 싶다.
이 문제의 궁극적인 문제 해결책은 정부나 국민, 둘 중 누군가 혹은 둘 다 돈을 더 쓰는 것이다. 정부가 돈을 더 쓴다면 공공 의료 강화 등의 정책으로 추진될 것이고, 국민이 돈을 더 쓴다면 의료 민영화의 길로 가게 될 것이다. 둘 다 돈을 더 쓴다면 지금의 의료 체계가 유지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전체 의사수의 10% 남짓 되는 전공의들만 빠지는데도 대학병원 시스템 자체가 망가진다는 건, 애초에 이 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는 의미다. 전문의 고용을 확대하고 간호사 권한을 늘리고 PA 등을 도입해서 전공의 부담을 줄이는 시스템이 도입되어야 기피과의 전공의 부족으로 인한 문제, 향후 비슷한 일이 생길 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예방할 수 있다.
단, 이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속칭 미용 의사들에 대한 문제이다. 이들의 존재로 인해 기피과 의사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고 전문의 지원 분야가 편중되는 문제가 생겼다. 이들은 대부분 비급여로 먹고살기 때문에 건강보험 재정과 당장 직결되는 문제는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이들의 높은 소득이 전체적인 의사 인건비 증가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의대 정원을 늘리든, 미용에 대한 자격을 완화하든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이들의 소득을 끌어내려야 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이 사태의 결론은 의사, 정부, 국민 모두 피해자라는 점이다.
의사는 국민의 지지와 여론을, 정부는 시간을, 국민은 소중한 목숨과 건강을 잃어가고 있다.
앞으로 사태가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겠지만, 단기적으로 끝날 문제 같지는 않아 보인다. 최소 총선 이후까지는 지속될 것으로 보이고 선거 결과에 따라 문제 해결 방법이나 해결 방향이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어 보인다. 부디 조속히 해결되어 선량한 국민들이 많은 피해를 보지 않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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