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상황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심각한 모양이다. 정부에서 선제적으로 대규모 부동산 규제 완화책을 들고 나왔다. 부동산 규제 지역 해제와 대출 규제를 다소 완화한 것으로는 효과가 나타나지 않음을 확인한 정부는 마지막 카드인 다주택자를 대상으로한 부동산 및 대출, 세금 규제를 해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번 규제 완화의 핵심은 아래와 같다.
자세한 내용을 하나씩 살펴본다.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2020년 8월, 주택 가격 안정을 위해 도입된 다주택자에 대한 취득세 중과가 완화된다.
현재는 2주택부터 조정대상지역은 8%, 3주택부터는 비조정대상지역 8%, 조정대상지역 12%, 4주택 이상이나 법인의 경우 12%의 취득세율을 부담해야하는 상황이다. 과거부터 다주택자에 대한 지나친 규제라고 말이 많았던 규제였으나, 추가 수요 유발로 인한 가격 상승 우려 때문에 규제가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정부는 주택 시장이 과열에서 침체로 바뀐 지금 시점에까지 적용할 규제는 아니라고 판단, 규제를 완화했다.
취득세 중과가 완화되면 2주택까지는 조정대상지역과 무관하게 주택 가격에 따라 1~3%의 취득세가 부과된다. 3주택 이상부터는 지금 적용되는 세율의 절반을 적용한다. 적용 시점은 2022년 12월 21일부터이며 기준일은 잔금지급일이다. 잔금지급일이 2022년 12월 21일 이후라면 취득세 중과 완화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정부에서 똘똘한 1주택이 아니라 똘똘한 2주택을 권하는 모양새다. 무주택자들은 돈이 없거나, 금리가 높아서 못 사고, 1주택자는 기존 주택 처분을 해야하는데 집이 팔리지 않으니 못 사고, 다주택자는 세금이 무서워서 못 사고 있는게 현재 부동산 시장이다. 이번 취득세 중과 완화는 1주택자들이 2주택자로 진입하는 허들을 낮춰주었다. 한 마디로 세금 깎아줄테니 집 사라는 것이다. 현금 보유가 탄탄한 1주택자의 경우 세금부담이 크게 줄어들어 핵심지의 급매 매물을 추가 매수 할 기회가 열리게 되었다.
기존 23년 5월까지 적용되는 양도세 중과 배제 기간이 2024년 5월까지 1년 더 연장된다.
양도세 중과는 향후 세법 개정을 통해 근본적인 개편안이 마련될 계획이다. 일단은 임시적으로 중과 유예 기간만 늘렸다.
양도세 중과를 피하기 위한 매물이 내년 5월 전까지 몰려, 하락장 속에서도 가격 하락을 부채질 하고 있다. 양도세를 내지 않으려면 꼭 5월 이전에 팔아야 하기 때문에 급매 가격으로라도 매도를 하는 것이고, 하락장에는 매도가가 시세가 되는 경우가 많아서 부동산 가격 하락을 더 부채질한다. 양도세 중과 배제 기간 연장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 보인다. 일단 시장에 나오는 매물의 수를 줄여 공급을 줄이고 이를 통해 가격 하락의 속도를 늦추겠다는 뜻이다.
분양권과 입주권 매매 시 부과되던 양도세 세율은 보유 기간이 1년 이상일 경우 60%, 1년 미만일 경우 70%이다. 양도세가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분양권과 입주권 매매 시 양도세율을 보유 기간이 1년 이상일 경우는 폐지, 1년 미만일 경우는 45%로 적용한다.
양도세율이 크게 낮아졌기 때문에 분양권과 입주권 거래가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1년 이상된 물건은 양도세가 아예 폐지되었기 때문에 시장에서 보유한지 1년 이상된 매물들이 많이 거래될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서울특별시 전역과 경기도 과천시, 하남시, 광명시, 성남시(수정구, 분당구)에 적용중인 투기지역 및 투기과열지구 지정이 2023년 초에 해제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전국 모든 지역이 부동산 규제 지역에서 해제되게 된다.
투기지역이나 투기과열지역에서 비조정대상지역이 되면 대출, 세금, 청약의 규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워진다. 중도금 대출 비율도 올라가고(50% -> 60%), 중도금 대출도 보유 주택수와 무관하게 받을 수 있게 된다. 양도세 비과세 요건도 거주에서 보유로 조건이 바뀐다. 세대주가 아닌 세대원도 청약 1순위 자격을 얻을 수 있고 재당첨 제한도 사라진다. 전반적으로 부동산에 투자하기 좋은 환경이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계속 강도 높은 규제 지역으로 묶여있었던 서울 전 지역이 규제에서 완전히 해제된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금지되어있던 규제지역 다주택자에 대한 주택담보대출을 LTV의 30%까지 허용할 계획이다.
다주택자들이 가지고 있는 주택을 담보로 추가로 주택을 매수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전세 가격이 내려가서 역전세가 났을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통한 전세 보증금 상환으로 집이 경매에 넘어가지 않도록 조치할 수 있게 되었다. 대출 장려 정책이기 때문에 부동산 시장에 추가 자금이 흘러 들어올 길이 하나 더 열리게 됐다.
10년 이상 임대를 목적으로 전용면적 85제곱미터 이하 아파트를 매수할 시 세금 혜택을 주는 주택임대사업자 제도가 다시 등장할 예정이다. 단,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을 바꿔야 하는 내용이라 야당의 협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민간 임대사업자가 받는 세제 혜택에는 대표적으로 취득세와 재산세 감면이 있다.
임대사업자가 전용 85제곱미터 아파트를 최초로 분양받은 경우, 면적 등에 따라 취득세가 50% ~ 100% 감면된다.
- 60제곱미터 이하: 85% ~ 100% 감면
- 60 ~ 85제곱미터이하: 50% 감면(20호 이상 임대하는 경우)
※ 단, 취득당시 가격이 6억원 이하(수도권), 3억원 이하(비수도권)여야 함
임대사업자가 임대 목적으로 사용하는 아파트에 대해 면적 등에 따라 재산세가 25% ~ 100% 감면된다.
취득세와 재산세 외에도 양도세 중과 배제, 종부세 합산 배제, 법인 매입 시 법인세 추가과세 배제 등의 혜택도 제공된다.
임대사업자에게는 LTV 상한을 일반 다주택자보다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10년이 아닌 15년 이상 임대 시 수도권 9억원, 비수도권 6억원 이하로 범위를 확대해준다.
정부에서 민간 임대사업자제도 부활 카드를 만지작 거린다는 기사가 나오고 있었는데 설마설마했다. 그만큼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큰 정책이기 때문이다. 과거 문재인 정부 때 민간 임대사업자제도가 시행되면서 부동산 시장 상승에 불을 붙였던 적이 있다. 민간 임대사업자 등록 제도는 다주택자들에게 굉장한 세제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에 지금 분양가가 살만한 가격이라는 생각이 들면 매수에 뛰어들 가능성이 있다.
정부가 이정도까지 부동산 규제를 풀었다면, 부동산 하락을 막기 위해 정부는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고 생각한다.
이전 정책들이 효과가 없자 예상대로 다주택자들에 대한 규제를 크게 풀었다. 부동산 시장 흐름을 결정하는 3요소로 크게 금리, 대출정책, 세금정책을 꼽는다. 금리가 가장 큰 요인, 그 다음이 대출, 마지막이 세금이다. 금리는 세계 경제 상황과 맞물려 결정되기 때문에 우리나라 자체적으로 결정이 불가능한 요소이고 나머지는 정부 차원에서 결정할 수 있는 요소다. 작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정부의 부동산 관련 규제 완화로 대출과 세금에 대한 규제가 사라지거나 완화되었다.
지금 당장 가장 강력한 요인인 금리는 복지부동이라 정책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듯 보인다. 그러나 내년에 미국의 금리가 안정세로 돌아서고 금리 상승의 고점이 보인다는 시그널이 나타나면, 최근 일련의 규제 완화 때문에 부동산 시장의 흐름이 바뀔 수 있는 기본적인 여건은 마련되었다고 본다. 금리 요소만 잡힌다면 금리, 대출, 세금의 3박자가 모두 상승을 조준하기 때문이다.
만약 내년에도 금리가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면, 정부의 이번 대책 역시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상승장에는 어떤 대책도 상승을 막을 수 없듯이, 하락장에는 어떤 대책도 하락을 막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이번 하락장이 양적 긴축과 금리 인상 요인에 경제 사이클 하강까지 더해진 생각보다 깊은 하락장이라면 백약이 무효일 수도 있다. 지금 상황에서 모든 변수의 시작과 끝은 금리에 있다.
여기서부터는 가치 판단의 문제인데 최근 정부의 선제적인 부동산 규제 완화가 과연 옳은가란 생각을 해본다. 일부에서는 비정상의 정상화라고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를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부동산 가격이 고점 대비 30~40% 내려온 곳도 있고 전반적으로 내려온건 맞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아직 부동산 가격이 충분히 안정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한국부동산원에서 발표하는 서울의 아파트 실거래가 지수는 아직도 2017년에서 약 60% 증가한 수준이다.
워낙 비싼 고점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하락폭이 크게 느껴지는 것이지, 절대적인 가격 자체는 소득 대비 아직 비싸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경제의 잠재적인 폭탄으로 여겨지는 높은 가계부채 비율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부채를 추가로 권장한다는게 거시 경제 측면에서 과연 옳은 방향일까?
만약 금리가 안정화된다면, 다주택자에 대한 대출을 재개하고, 민간 임대사업자 혜택을 부활시켜 부동산 시장을 다시 활성화 시키는 지금의 정책은 대출로 인한 유동성이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어 부동산 가격이 다시 펌핑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경제의 사이클에서 자산 가격에 발생하는 일시적인 거품은 어찌보면 피할 수 없는 문제이다. 단, 사이클에서 거품이 있으면 거품을 완전히 없애고 다시 사이클을 돌려야 한다. 그래야 다음 하락 사이클 때 충격이 적다. 제대로 거품이 꺼지지도 않았는데 다음 사이클을 돌리면, 이후 하락 사이클이 왔을 때 감내해야 할 고통은 더 커진다. 지금의 규제 완화는 건설사 부도와 PF 시장의 붕괴, 이로 인한 경제 침체로 발생하는 당장의 고통을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 겪어야 할 고통을 피한 대신, 미래에는 더 큰 고통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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