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개월 아이가 새벽에 아파서 차병원에 다녀왔다. 아기가 새벽에 아프면 응급실을 가는 일이 생긴다고 들었는데 막상 이런 일이 나에게 생기니 당황스러웠다. 이번 글에서는 새벽에 어린 아기를 데리고 응급실에 가야하는 상황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기록해 놓기 위해 남겨둔다.
아이의 증상은 구토였다. 아이가 잠들고 두 시간 정도 뒤에 구토를 심하게 했다. 구토에서는 낮에 먹었던 초콜렛의 향기가 강하게 풍겨 나왔다. 아기가 아까 낮에 가게에서 얻어 먹었던 초콜렛의 양이 다소 많았었다는게 기억났다. 그래서 우리는 아기가 초콜렛을 많이 먹어서 속이 안 좋아 구토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토해서 놀란 아이를 씻기고, 옷을 갈아 입히고, 조금 놀리고, 물을 조금 먹였다.
그런데 물을 먹은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또 토하는게 아닌가. 다시 씻기고 이번엔 물을 아주 조금만 먹이고 재웠다. 그렇게 또 30분이 지났는데 아기가 일어나서 다시 또 토를 하는 게 아닌가. 물론 아까 이미 다 나와서 물만 나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토는 토였다. 벌써 3번째인데... 병원에 갈까 하다가 시간도 늦었고 아이도 곧 괜찮아져서 내일 아침 소아과에 가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리고 다시 잠이 들었는데... 또 일어나서 구토를 하고, 닦아노니 또 하고, 누우니 또 구토를 해서 결국 응급실을 가보기로 했다.
119를 부르기에는 아기의 증상이 위급한 건 아니어서 자차를 이용해 응급실에 방문했다. 분당차병원 본관에 있는 응급실에 가야하는 줄 알고 갔더니, 소아응급실은 본관이 아닌 분당차여성병원 건물에 있다고 했다. 분당차병원 소아응급실에서 밟아야 할 절차는 아래와 같다.
원무과에서 접수하면 서류를 하나 주는데 이걸 환자분류소에서 진료를 받을 때 보여줘야 한다.
소아응급실에는 새벽 4시임에도 아픈 아기 3~4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조금 기다리니 차례가 되어 환자분류를 받았다. 환자분류할 땐 혈압, 체온 등을 체크하고 기본적인 문진을 진행한다. 우리 아이는 경증으로 진단되었고 밖에서 좀 기다리니 진료소에 들어오라는 안내가 왔다.
우선 엑스레이를 찍고 결과를 보자고 하여 옆에 있는 영상의학과에서 엑스레이를 찍었다. 아이가 많이 울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안 울어서 다행이었다. 엑스레이는 별다른 대기 없이 금방 찍을 수 있었다.
대학병원은 외래든, 응급실이든, 낮이든, 새벽이든 대기의 연속임은 어쩔 수 없나보다.
엑스레이를 찍고 또 대기한 후 결과를 확인하러 들어갔다. 의사의 진단은 아이가 장염 바이러스가 있는 것 같은 데, 엑스레이로 보니 변이 가득 차 있어서 설사로 나오지 못하고 대신 구토로 나온다는 것이었다. 장에 변이 많으면 아래가 아니고 위로 올라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내려진 처치는 관장이었다.
관장을 해야해서 옆에 있는 중증 환자가 머무는 응급실로 이동했다. 아이는 침대에 엎드려서 관장약을 주사 받았다. 간호사는 나에게 아기의 항문을 손가락으로 15~20분 간 막고 있으라고 했다. 그 전에 변을 보면 관장의 의미가 없으니 아기가 힘들어해도 꼭 시간을 지키라고 했다. 또한 변이 많아 기저귀 밖으로 흘러내릴 수도 있으니, 밖에있는 화장실에서 작업(?!)을 진행하라고 했다.
그래서 아이를 데리고 화장실에 가서 화장실 앞에서 15분을 아이의 항문을 손가락으로 막으면서 서 있었다. 약을 넣고 시간이 조금 지나자 아이 배에 신호가 왔는지 울기 시작했다. 아이의 괄약근에 힘이 들어가는 게 손가락 끝으로 느껴졌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야했기에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고 손가락에 힘을 풀자 아기는 바로 변을 봤다.
화장실에서 물티슈로 뒷처리를 하고 나와 간호사에게 결과를 보고했다. 간호사는 일단 물을 먹이고 20분 정도 토하는지, 안하는지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다행히 20분 동안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소아응급실 옆에는 보호자 관찰실이라고 해서 작은 대기실이 있는데, 이곳에 책이 5~6권 정도 있어서 책을 읽으며 기다렸다. 아이가 토를 하지 않아서 병원에서는 퇴원해도 된다고 했다. 약을 처방해줄건데 새벽이라 문 연 약국이 없어서 병원에서 가져다 준다고 했다. 약이 오는 시간동안 수납을 진행했고 20분이 지나자 간호사에게 약을 받을 수 있었다. 모든 과정이 끝나니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응급실 접수부터 퇴원까지 2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다.
응급실 진료비는 약값을 포함해 5만원 정도였다. 아마 아이여서 건강보험에서 더 많이 지원을 해준듯 싶다(어른은 응급실오면 최소 10만원 이상).
응급실 앞 대기실에는 소아 환자들을 위해 만화 케이블 채널이 계속 방송되고 있었다. 무슨 요괴 만화랑 브레드 이발소, 소피 루비 같은 만화들을 봤다. 아이는 기다리다 잠들었다. 새벽에 잠을 못 자서 그런지 꽤나 오랫동안 자고 있는 중이다.
외국에 가본적은 없지만, 새벽에 아픈 아이를 데리고 이렇게 체계적이고 간편하고 저렴하게 진료를 볼 수 있는 나라는 전세계에서 우리나라만한 나라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밤잠 못자고 당번으로 새벽에 근무하고 있는 의사와 간호사 분들에게 고맙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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