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유행에 민감한 나라다. 대한민국에서의 유행은 패션 분야에 그치지 않는다. 입고 먹고 자는 것부터해서 무슨 일을 하는 것까지 유행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10년 전 공시 열풍이 불어 공무원만 바라보는 사회가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던 적이 있고 최근까지도 개발자 열풍이 불어 코딩 학원이 성황을 누렸었다. 직업에서의 다음 유행은 전문직이다. 흔히 '사'자로 끝나는 전문직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전문직의 인기와 선호현상은 수 십년전부터 있었던 일이지만 최근 몇 년간 전문직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이번 글에서는 왜 사람들이 전문직에 더 목을 메는지 그 이유를 분석해봤다.
전문직의 정의는 다양하다. 전문직은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등이 필요한 직업'이라는 뜻인데, '전문직'에 대해 규정한 법령이 없기 때문에 무엇이 전문직인지 아닌지 사람마다 의견이 갈리기도 한다. 대한민국에서 사람들이 인정하는 전문직의 조건은 아래와 같다.
자격의 취득과 박탈, 업무의 범위, 권한과 책임 등이 법으로 규정됨
자격이나 면허로 공급 제한
자치 협회의 존재
위 조건에 속하는 전문직으로는 아래와 같은 직업들이 꼽힌다.
그러나 위 직업들이 모두 사람들이 말하는 속칭 전문직이라고 보기는 무리가 있다.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는 '전문직 = 고소득' 공식이 있기 때문이다. 의사나 간호사 모두 면허가 있으나 간호사가 전문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다. 마찬가지로 교사도 관련 법에 의해 교사 자격증이 발급되고 자치 협회도 있으나 공무원이란 한계로 소득의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전문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위의 조건을 만족하면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고소득을 얻을 수 있고 은행에서 전문직 신용대출이 가능하며 많은 사람들의 인식 속에 전문직으로 자리잡고 있는 직업을 추려내면 아래와 같다.
최근들어 전문직이 더 각광을 받게 된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가장 큰 이유는 역시나 '돈'이다. 아래 서술할 여러가지 이유들의 궁극적인 지향점이 경제적인 이유, 즉 돈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문직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아래와 같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코로나19는 임금 격차 확대에 기름을 부었다.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공무원과의 임금 격차도 확대중이다. 소득이 똑같이 10%가 늘어도 200만원이 10% 늘어나는 것과, 500만원 10% 늘어나는 것은 결국 소득 차이를 키운다. 하물며 소득 증가율도 더 낮다면? 중소기업이 항상 구인난에 시달리는 이유다.
높은 물가에서 살아남으려면 소득을 높여야하고, 소득을 높이기 위해서는 대기업에 취업해야 한다. 그러나 대기업의 문은 여전히 좁고 갈수록 좁아지고 있는 느낌이다. 특히 이과가 아닌 문과라면 더 그렇다. 대기업 취업 외에 고소득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전문직 라이센스를 따는 것이다. 대기업 중에서도 업종별 소득 격차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고소득을 보장하는 대기업 일자리를 얻기 어려워 지면서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전문직의 난이도를 낮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전문직 아래 티어라고 볼수 있는 직업들이 많이 사라졌다. 대표적으로 대기업, 중견기업, 공무원(고시)을 꼽을 수 있는데 대기업은 대규모 공채가 사라지며 입사 난이도가 크게 올라갔고, 중견기업은 임금에서 대기업에 밀리는 상황이다. 공무원 역시 대기업과의 임금 격차 확대로 인해 최근 티어가 급속도로 내려가는 중이다. 결국 공부 좀 한다는 문과 출신들이 갈 곳이라고는 고시나 전문직 밖에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중소기업이나 일부 생산직에서는 사람이 없어서 언제나 구인 중이라는 이야기가 많은데 이건 논외다. 20대는 더이상 이런 일자리를 원하지 않는다. 모르긴 몰라도 편의점 알바를 하는 한이 있어도 중소기업 생산직은 안 갈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고학력자의 눈에 맞는 일자리는 과거에도 부족했고 지금도 부족하다. 아마 미래에도 부족할 것이다.
각자가 스스로 제 살길을 찾는 시대가 되었다. 회사가 내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는 시대는 예전에 왔지만, 최근에 더 심해진 모습이다. 과거에는 비교적 뚜렷한 성공의 길이 있었다.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가서, 대기업에 취직하면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고 내 집도 마련하고 비교적 안정적인 중산층의 삶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성공의 길이 무너졌다.
더 이상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간다고 안정적인 중산층의 삶이 보장되지 않는다. 서울대학교를 나와도 능력이 없거나 재수가 없으면 손가락을 빨아야 하는 사회가 되었다. 첫째도 능력, 둘째도 능력, 셋째도 능력인 사회가 되었다. 대기업은 대규모 공채 대신 경력직 채용을 시작했다. 사회초년생들의 입지는 더 좁아졌다. 자신만의 성공의 길을 스스로 찾아야 하는 시대이다. 원래 주어진 길을 따라가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이제 없는 길도 스스로 만들어 가야한다. 성공은 커녕 안정적인 삶도 요원해지고 미래는 더 불안해진다.
믿을 건 내 능력밖에 없는 사회에서 내 능력을 증명하면서 안정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전문직의 라이센스를 취득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사회 안전망이 매우 약한 나라로 꼽힌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변함이 없다. 잘 하다가도 한 번 실패하면 나락으로 빠진다는 인식(인식이 아니라 사실이다)이 사람들 마음 깊숙히 자리하고 있다. 대기업 취업의 바늘구멍을 뚫었어도 구조조정 한 방이면 나락으로 갈수 있는게 대한민국이다. 자영업? 자영업 개업 후 5년 내 폐업률을 보고오면 대한민국에서 자영업을 하겠다는건 섶을 지고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것이라는걸 알 수 있다. 삼성전자도 23년 1분기 실적발표에서 전년 동기대비 영업이익 95% 감소를 발표하며 무적이 아니라는걸 보여주지 않았는가.
반면 전문직의 라이센스는 자신을 지키는 최후의 방패가 되어준다. 개업도 가능하고 여의치 않으면 회사에 취업할 수도 있다. 협회의 압력과 진입 장벽이 높아 공급이 제한적이고 아무나 할 수 없기 때문에 대우가 좋다. 나이가 들면 회사원은 퇴직해야 하지만, 전문직의 라이센스는 사라지지 않는다. 본인의 능력과 건강만 허락된다면 평생 소득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고소득을 안정적으로 누릴 수 있다는 메리트는 사회가 불안해질수록 커지기 마련이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재택 근무가 많아지고 직장을 잃는 사람도 늘어나면서 이전 대비 상대적으로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 시간을 자기계발을 위해 쓰기 시작했고 그 발로 중 하나가 전문직 시험 응시 인원 증가였다. 이는 실제로 주요 전문직 시험 응시자 수가 2020년을 기점으로 크게 증가했다는 점을 통해 추론해볼 수 있다.
전문직의 끝판왕이라면? 당연히 의사이다. 전문직 중에서도 리스크는 가장 적고 소득은 가장 높은 편이기 때문이다.
전문직 열풍 속에 의대의 인기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모습이다. 2023년 자연계 상위 20개 학과는 의대와 치대가 차지했다. 과거에는 서울대 컴공이나 서울대 공대 등 의대가 아닌 과가 1~2개 정도 포함되었었는데 2023년에는 모두 의학계열로 통일되었다.
의대 정시 합격자 중 N수생 비율은 평균적으로 70%가 넘는다. 가장 높은 이화여대의 경우 92%에 달할 정도다. 의대에 가기 위해 재수, 삼수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코로나 이후 만 25세 이상 대학교 입학생 수가 크게 늘어났다. 의대나 로스쿨 등에 가기 위해 새롭게 대학에 입학하는 속칭 장수생이 늘어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전문직 라이센스를 따기 위해 학부부터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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